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1920년대의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1920대의 파리는 예술의 황금기였다. 지금 시대가 파리에 대해 가지는 애정은 100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영화는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못한 1920년대의 파리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영화에서는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한다. 영화에 나오는 1920대의 파리를 빛낸 예술가들과 인문학에 대해 알아보자.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하는 이야기
주인공 길은 약혼녀의 가족들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간다. 길은 이 예술의 도시에서 낭만을 느끼고 싶다. 하지만 약혼녀 이네즈는 파리의 화려함만을 관광하려 한다. 이네스에게 실망한 길은 혼자서 파리의 밤거리를 거닐다가 길을 잃는다.
그 순간, 열두시를 알리는 종이 울린다. 그리고 눈앞에 클래식한 푸조 차가 나타난다. 그는 차에 홀린 듯이 올라타고 한 파티장에 도착한다. 그는 그곳에서 믿을 수 없는 상황을 겪는다. 그의 앞에는 1920년대의 소설가 'F. 스콧 피츠제럴드'가 서있다. 게다가 1920년대의 유명한 뮤지컬 작곡가 '콜 포터'가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길은 자신이 동경하던 낭만의 시대인 1920년대의 파리로 시간여행을 하게된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길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난다. 길은 자신이 쓴 소설을 헤밍웨이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흥분한다. 길은 이 시간여행으로 1920년대의 파리를 빛낸 예술가들을 만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1920년대의 파리는 왜 예술의 황금기가 되었을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20년대는 1차 세계대전 직후이다. 이 시기는 전쟁의 후유증을 환락과 예술로 승화시키는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했다.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26년에 출간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처음 등장했다. 그의 정신적 지주이자 소설가인 거트루드 스타인의 말을 차용해서 쓴 문구이다. 당시 스타인도 파리에서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했다. 그녀의 살롱은 젊은 예술가들이 시대와 철학을 논하는 공간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상실과 슬픔이 가득했다.
그들은 왜 파리로 향했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젊은 예술가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잃어버린 세대의 시대적 배경
1918년 1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사회는 큰 변화를 겪게 된다. 미국은 전쟁에 군수물자를 댄 덕분에 경제적 번영이 지속됐다.
대표적인 변화는 자동차 산업의 발전이다. 포드 사에서 제조 과정에 컨베이어 벨트 도입하여 대량 생산 체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당시 포드 자동차가 24초당 1대 꼴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내수 경제의 발전은 미국사회에 물질주의를 일으켰다. 사람들은 각종 신기술이 접목된 재화에 열광했다. 수요에 맞춰 공급도 끊임없이 발전했다. 이 현상은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하지만 미국 청년들에게 이 시대는 힘들었다. 참전 후 사회로 돌아왔지만 그들의 일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경기 호황과 일자리는 정비례 관계이다. 하지만 당시 미국의 산업에는 컨베이어 벨트 같은 신기술이 도입되고 있었다. 기계가 청년들을 대체해서 일자리는 감소했다. 전쟁에서 돌아온 청년들은 부를 축적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의 절망감
미국은 모두가 똑같은 재화를 소비하고 똑같은 취미를 즐겼다. 미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는 이런 획일화된 시대가 절망적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선정적인 뉴스와 가십거리로 가득해진 사회를 바라보며 환멸을 느꼈다.
그들은 자본 논리에 잠식된 고향을 떠나서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당시 파리는 전쟁 후의 혼란 속에서도 예술의 황금기를 이룩하는 중이었다. 순수예술과 새로운 사회의식을 결합하는 아방가르드 운동이 대표적이다. 파리는 젊은 예술가들이 개성을 표출하고 새로운 장을 열어나가는 기회의 땅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고향에서 잃어버린 정체성을 낯선 타국에서 다시 찾고자 노력하고 끝내 성취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 등장하는 1920년대의 대표 예술가들
이 영화에는 1920년대를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어니스트 헤밍웨이, F. 스콧 피츠제럴드,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이 있다. 그들은 당대 파리를 누비며 젊고 생동하는 예술을 창조해 냈다.
과연 이 시대 속 파리는 어떤 사상과 철학이 지배하고 있었을까?
영화 속에 등장하는 실제 예술가들을 알아보자.
문학을 대표하는 예술가들
1920년대 재즈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
그는 1924년 파리로 와서 본격적으로 문학적 재능을 발휘한다. 그는 파리에 온 지 불과 1년 만에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를 썼다.
이 작품은 화려하고 부유한 미국의 허상을 낱낱이 고발하고 있다. 이 책에는 미국의 어두운 이면이 가득했다. 성공과 부를 쫓는 물질 만능주의 사회 속에서 극명하게 나뉜 계급, 온갖 이권에 대한 부패, 무질서한 향락에 빠진 상류사회 등이다.
전쟁이 불러온 허무주의를 사치와 쾌락으로 씻어내려는 시대의 한계를 짚어냈다. 이 작품은 아직도 미국현대문학의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실주의 문학의 대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는 1921년에 소설가 셔우드 앤더슨의 추천을 받아 파리로 왔다. 그는 일간지의 파리특파원으로 일하며 유럽 전역을 활보하는 언론인의 삶을 산다.
반면 그는 첫 작품이 망하고 작가로 살아가는 일상은 어려웠다. 그러나 F. 스콧 피츠제럴드를 만나게 된다. 그는 헤밍웨이의 문체와 재능에 감탄한다. 그래서 그는 절친한 대형출판사 편집인들에게 헤밍웨이를 소개해준다.
이때부터 그는 멋진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926년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로 큰 명성을 얻게 된다. 이 작품으로 그는 참혹한 시대를 건조하고 간결한 문체로 그려내는 하드보일드 문학의 시초를 만들었다.
이후 그는 전쟁터를 다니며 얻은 영감으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등과 같은 명작들을 펴냈다. 1952년에는 자신의 쿠바 경험을 토대로 <노인과 바다>를 펴냈다. 이것으로 그는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며 명실상부한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미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
초현실적인 광기를 표현한 화가 살바도르 달리
비범했던 달리에게 파리는 영감의 원천이었다. 파리는 달리에게 두 가지 변화를 주게 된다.
첫 번째는 동경하던 피카소와의 만남이었다.
그들은 다른 예술관으로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하지만 달리의 초기작에는 피카소 특유의 입체주의 화풍이 녹아있었다. 달리에게 피카소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두 번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었다.
달리는 프로이트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프로이트가 제시한 꿈과 정신세계의 메커니즘을 반영했다. 그의 대표작인 <기억의 지속>도 정신분석학을 탐독하며 얻은 찰나의 영감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이처럼 그는 독보적인 예술 세계를 창조했다.
살바도르 달리의 우상이었던 파블로 피카소
피카소도 1920년대 파리에서 예술혼을 보여줬다.
영화에서 표현되는 것처럼 피카소는 스타인에게 후원을 받았다. 당시 스타인은 가난하지만 재능이 있는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으며 경제적 후원을 했다. 그녀가 지원한 화가들 중 가장 돋보인 건 피카소와 앙리 마티스였다.
그들은 입체파와 야수파의 창시자로서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다. 두 사람은 치열한 경쟁관계를 통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장을 열였다. 특히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하나의 평면그림을 두 가지 시각에서 해석하게 만드는 게 특징이다. 이것은 당대 동료화가들에겐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그의 예술세계는 명성과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과거의 예술에서 탈피한 새로운 문화의 발원지였던 당시 파리는 그의 예술관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음악을 대표하는 예술가들
미국의 작곡가 폴 포터
영화에서 길이 파티장에 들어설 때 멋진 피아노연주를 하던 남자가 바로 폴 포터이다.
처음 그는 브로드웨이 데뷔를 꿈꿨다. 뮤지컬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자 그는 1917년에 프랑스로 향한다.
당시 파리에는 미국에서 넘어온 안무가들과 재즈 뮤지션들이 많았다. 콜 포터는 이들과의 교류하며 음악에 대한 학업도 이어가며 활발한 작곡을 한다. 영화에서 울려 퍼지는 '렛츠 두 잇' 역시 그가 파리에 머물던 1929년에 발표된 곡이다.
프랑스음악계도 콜 포터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파리에서 보낸 20여 년 세월이 프랑스 음악문화가 발전하는 계기였다고 평가한다.
조세핀 베이커
영화에서 콜포터의 뒤에서 춤을 추고 있는 한 흑인 여성이 있다. 그녀가 바로 조세핀 베이커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뛰어난 예술성을 가져서 10대 때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 문화계에서 인종차별문화가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19살이었던 1925년에 프랑스로 넘어오게 된다.
당시 프랑스는 재즈 열풍이 불던 때라 그녀의 춤사위는 큰 각광을 받았다. 깃털 달린 치마와 바나나 벨트 등 이국적인 복장을 입고 춤을 추는 그녀의 모습은 파리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흑인 사회의 자율성과 여성의 성적 해방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차별의 시대 속에서 그녀의 신념은 성별과 인종을 넘나들며 실현됐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서 사후에 프랑스 위인들을 안장하는 판테온에 묻히는 영광을 누린다.
<미드나잇 인 파리>의 1920년대 파리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화의 집약체
야수파의 대가이자 20세기 초 미술사를 이끈 앙리 마티스는 예술엔 한 시대가 담겨있다고 했다. 이 영화 속 예술가들도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대가 투영된 예술을 창조해 냈다. 그 예술이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주저하지 않고 표현하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 덕분일 것이다.
그들은 1920년대의 혼란한 시대를 표현하기 위해서 누구보다 치열했다. 그들은 그 시대를 살아내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없이 표현해 냈다. 그 과정에 수반된 그들의 이유 있는 용기와 천재성이 은은하게 녹아있는 영화였다. 이 영화 속에 예술가들의 대사와 작품을 음미하면서 100년 전 생동하는 파리를 오감으로 즐겨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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